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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불멸의 사랑

 

 

​글 |   JEONG, KYUNG HWA

 

하늘을 나는 비행기 창문 밖 끝없이 펼쳐진 구름을 본다. 드디어 독일로 가는구나. 설레는 마음에 10시간 가까운 긴 비행에도 피곤한 줄 몰랐다. 처음 독일 땅을 밟았을 때 나는 눈을 감고 깊은숨을 들이마셨다. 마치 고향에 온 것처럼 평온했다. 독일과 나는 한 몸 같다.

 

3년 전, 심리상담가인 지인이 있어 우연히 전생 체험을 했었다. 재미 삼아 도전했다. 다 아는 사실이지만 최면술이다. 아늑하고 편안한 방, 복잡한 생각들이 잠잠해지고 긴장이 풀린다. 체면이 시작되었다. 의심 많은 나는 설마 내가 쉽게 최면에 걸릴까? 하는 마음으로 믿고 맡겨 보기로 했다.

 

“자. 지금 당신은 어디에 있나요?”

“... 드레스를 입고 중세시대 서재 같은 곳에 있어요. 머리카락은 긴 갈색, 얼굴이 하얗고 예뻐요.”

“그곳에 다른 누가 있나요?”

“네, 귀족으로 보이는 남자들 십여 명이 모여 있어요.” 최면을 돕던 지인이 좀 주저하는 듯 멈칫하더니 조심스레 질문을 이어갔다.

“당신은 거기서 뭘 하고 있죠? 놀고 있나요?”

최면 중에 반발심이 일었다. 내가 전생에 화류계 여인이었을까 걱정하는 것 아닌가 싶었다.

“아니에요. 심각하게 뭔가 논의하고 있어요. 전 여자라서 행동에 나서지는 않아요. 중요한 결정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대단히 위험하지만, 꼭 해야만 해요.”

“아, 그럼 당신도 귀족이군요. 그런가요?”

“네. 높은 신분의 귀족이에요”

“어느 나라에 있나요?”

“아... 잘 모르겠어요. 유럽 같은데...” 최면사가 좀 더 깊게 들어가 보자며 사인을 주자 나는 대답했다.

“독일 같아요.” 실은 독일이라고 말할까 영국이라고 말할까 갈등했다. 결국 독일이라고 말했다. 마지막 질문은 죽음에 관해 물었다.

 

“자, 그럼 당신은 어떻게 죽게 되나요?”

“밤길을 걷고 있어요. 아주 어둡고 인적이 없어요. 남자와 같이 걷고 있어요. 우리는 여전히 얘기하느라 주위를 살피지 않고 있어요. 그런데...골목길에 들어서자 갑자기 누군가 튀어나와 저를 칼로 찔러요. 아... 그리고 피를 흘리면서 쓰러져 죽어가요. 귓가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남자의 울부짖음이 멀어져 가요. 흑흑흑”

 

최면이 끝나고 나는 순정 만화를 너무 많이 본 것 같다고 생각했다. 말을 지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헷갈렸지만 분명 지독히도 슬펐다. 그래서 잘 우는 사람이 되었나 보다. 지인은 최면으로 내 죽음의 결과를 바꿔주겠다고 했다. 해피엔딩으로 불행한 죽음을 되돌리자고 말이다. 내가 죽어갈 때 쓰러진 나를 끌어안고 울부짖던 건장한 남자.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에 서둘러 눈을 감았다. 장면은 다시 그 어두운 골목길. 아름다운 그는 옆구리에 칼을 차고 내 옆에 바싹 붙어 걷는다. 괴한이 나타났지만, 그는 재빠르게 나를 뒤쪽으로 밀어내고 칼을 뽑아 괴한을 물리쳤다. 뒤를 돌아보니 우리가 타고 온 마차가 우리를 따라오고 있었다. 우리는 마차에 뛰어올라 빠르게 내달렸다. 흔들리는 마차 안, 그는 칼을 움켜쥐고 긴장을 풀지 않았지만, 다정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믿음직한 이 사람에게 내 모든 것을 다 주어도 아깝지 않으리... 장면은 바뀌고, 노쇠한 나는 편안한 침대에 누워 자식들의 키스를 받으며 죽음을 맞이하고 있었다. 후회 없는 삶을 마감하는 나는 무척 행복해 보였다. 그러나 나의 사랑이 보이지 않는다. ‘제, 제발, 그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려줘...’

 

“자! 하나, 둘, 셋 하면 눈을 뜹니다. 하나, 둘, 셋!”

 

왜, 이렇게 끝내는 거지? 내 사랑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아야 해피엔딩이 되는 거잖아! 이건 아니다. 가장 중요한 순간이 빠졌다. 지인에게 다시 하자고 말하고 싶었지만 부끄러워서 포기했다. 그러나 찾고 싶다. 설마 지금 남편은 아니겠지? 에이, 아닐 거야. 남편은 겁이 많아서 운전도 내가 한다. 못도 내가 박고, 전등도 내가 갈고 물건 조립도 내가 한다. 신혼 초, 아파트 1층에 살 때 더워서 문을 열어 둔 적이 있었다. 그때 쥐가 집 안으로 들어와 쏜살같이 싱크대 밑으로 숨어 버렸다. 너무 놀라 나는 현관문을 제외한 문이란 문은 다 닫았다. 그리고 나서야 소파에 다리를 올리고 앉아 있는 남편을 발견했다. 빠르다. 어이가 없었다. 땅콩만 한 여자는 어떻게든 해결해 보려 노력하는데 키 180cm 남자가 다리를 올리고 소파에 앉아 있다? 남편에게 쥐를 잡으라고 했다. 못하겠다고 한다. 순간 이혼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할 수 없이 전화기를 들고 119에 전화했다.

 

“여보세요? 119죠. 저, 집에 쥐가 들어왔는데 좀 잡아주실 수 있나요.”

몇 초간 말이 없다.

“... ... 하, 참. 아저씨 없으세요?”

“남편이 있기는 한데, 못 잡겠다구... TV에서 보니까 변기에 빠진 고양이도 꺼내주고 하시던데요.”

“저희가 쥐까지 잡아야 하나요?” 짜증 그득한 목소리였다. 아저씨보고 잡아달라고 하라면서 전화를 끊어버린다. 덕분에 나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서 소리쳤다.

“쥐 잡아 줘!!!!” 나는 식탁 의자에 올라가 소리쳤다.

“내가 어떻게 잡아!!!” 더 큰 소리가 돌아온다. 결국은 나 혼자서 종이상자 등 온갖 것을 동원해 거실 쪽 통로를 막은 뒤, 먼지떨이로 싱크대 밑을 두드려 쥐를 몰았다. 물론 나는 식탁 의자를 가져다 놓고 그 위에 있었다. 한참을 씨름하다 쥐가 후다닥 튀어나왔고 이리저리 헤매더니 현관으로 줄행랑을 쳤다. 현관문을 닫은 나는 곧바로 안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몸을 던지며 통곡했다.

“으아아아악~~~”

 

최면 이후, 독일은 단지 어떤 나라가 아니었다. 그리움이다. 나를 안고 울부짖던 그와 함께 살았던 나라다. 회사 업무 관련으로 3번 정도 독일을 다녀온 후 나는 결심하고 2달 개인 일정으로 가방을 쌓다. 그리고 독일에서 어학원을 다녔다. 나이 50을 훌쩍 넘기고도 즐거웠다. 어학원 사람들은 모두 2~30대로 나이와 국가를 초월해 허물없는 친구가 되었다. 그러다 좁은 기숙사로 돌아오면 눈물이 쏟아졌다. 슬퍼서 우는 것도 아니다. 그냥 눈물이 났다. 정말 내면 깊은 곳에서 그리움이 솟구쳐 올라왔다. 잃어버린 내 사랑. 영원히 기억될 내 사랑이 여기 있을 텐데. 분명 운명은 우리를 한 지점으로 이끌었을지 모른다. 그도 뭔가에 이끌리어 독일 하늘 아래서 나를 기다리고 있지는 않을까?

한국으로 돌아오는 날, 마지막 독일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영원히 소멸하지 않을 불멸의 내 사랑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하늘 아래 그리고 길 위 어딘가에 우리가 있다. 물론 내가 한국에서 태어났듯이 그도 다른 어딘가에서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겠지? 이것이 내가 독일을 좋아하게 된 황당한 이유 중 하나다. 이 우스꽝스러운 독일사랑이 나에게 삶의 원동력을 되고 있다. 지금 나는 독학으로 독일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 배우는 것이 즐겁다.

 

‘난 여기 있다오. 내 사랑, 이생이 아니어도 좋아요. 어제라도 좋으니 찾아와만 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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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동생을 아프게 했어?

 

 

|   JEONG, KYUNG HWA

 

잠시 멈춰 숨을 고른다. 살며시 문을 밀고 들어섰다. 여기 오기까지 52년이 걸렸다. 하얀 가운이 잘 어울리는 의사가 부드러운 눈인사로 책상 앞 의자를 가리켰다. 문을 열고 들어서 자리에 앉기까지 6초 걸렸다. 정신과 상담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수없이 상상했었다. 그런 내 앞에 정신과 의사가 앉아있다. 그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떻게 왔어요?”

“아, 네, 저... 제가 긴장을 많이 해요. 책임 추궁을 당하거나 긴장할 때, 심장이 터질 것 같아요. 이유는 모르겠어요.” 모자라고 바보 같은 나를 드러내는 것이 쉽지 않지만, 이 굴레를 벗고 싶었다.

간단한 테스트를 마친 후 의사는 말을 꺼냈다.

“테스트 결과 스트레스가 심한 것으로 나오는데 뭐가 제일 힘들어요?” 꼭 짚어, 어떻게 말하라는 것인지 당황스러웠다. 우선 일이 많다고 했다. 퇴근 후에도 새벽까지 일을 하는 일중독 성향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시 물었다.

 

“본인이 생각하기에, 사람들 앞에서 왜 긴장 한다고 생각해요?”

그건 내가 알고 싶다. 의사를 통해 원인을 알고 병이면 고치려고 이곳에 왔다. 그런데 의사로부터 거꾸로 질문을 받는 것이 이상했다. 심리학 책이나 더 읽을 걸 괜히 왔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난처한 눈빛으로 그의 눈을 응시했다. 의사는 나를 ‘ooo 환자분’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성을 빼고 ‘oo 씨’라고 불렀다. 그가 가깝게 느껴졌다.

 

“그럼, 어릴 때 제일 안 좋았던 기억 한 가지 말해 줄 수 있어요?” 나는 눈을 위로 치켜뜨고 기억을 더듬었다. 엄마가 부부싸움을 하고 나면 이상하게 나를 때렸던 기억? 자식은 4명이나 있었는데 말이다. 성질 더러운 언니 때문에 내 머리카락이 한 뭉치씩 뽑혔던 기억도 떠올랐다. 언니랑 대판 싸운 다음 날 미용실에 갔다. 미용실 언니가 깜짝 놀라 물었다. “어머나, 너 머리 왜 이래? 원형 탈모 생겼니?”

“아니에요. 어제 언니한테 쥐어 뜯겼어요. 진짜 언니 때문에 못 살겠어요.” 감정이 복받쳐 미용 가운을 뒤집어쓴 채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었다. 그뿐이 아니다. 연탄집게를 들고 있는 언니와 마주친 날의 무서운 기억도 생각났다. 그날도 언니는 나를 보자 연탄집게를 벌려 내 목을 짚어 꽉 조였다. 순간 ‘앗! 뜨거워!’

나는 언니를 있는 힘껏 밀쳐내고 펄쩍펄쩍 뛰었다. 다행히 아빠의 극진한 치료 덕분에 목 양쪽에 생긴 젓가락 모양 상처는 남아있지 않다. 그러나 가장 고통스러운 기억은 여동생 진이에 대한 것이다.

 

어린 시절 나는 진이를 좋아했다. 귀여웠다. 엄마와 아빠는 직업이 있어서 늘 집을 비우셨다. 언니와 나, 동생 진이는 보호자 없는 집에 남겨지곤 했다. 여하튼 엄마와 아빠가 3년 간격으로 사이가 좋았던 모양이다. 모두 3살 터울이다. 그때만 해도 아이들을 빈집에 남겨두고 일을 나가는 부모가 많았다. 엄마도 그런 간 큰 엄마였다. 1972년, 내가 6살이던 여름날. 간신히 걷는 동생을 데리고 집 밖으로 나왔다. 손에 움켜쥔 과자봉지에서 과자를 하나씩 꺼내 먹는 것이 즐거웠다. 3살짜리 진이는 내가 과자를 먹는 동안 뒤뚱뒤뚱 걷다가 넘어지곤 했다. 계단 근처로 가면 굴러떨어질 것 같아 진이를 내가 기대섰던 난간에 앉혔다. 맛있게 과자를 먹다가 옆을 보았다. 진이가 보이지 않았다. 우리 집은 2층이었고 아래는 상가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6살. 무엇을 할 수 있는 나이일까?

 

어른 슬리퍼를 신고 있던 나는 힘겹게 계단을 내려가 동생을 찾아보았다. 아래층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웅성거렸고, 아주머니들은 놀란 표정으로 물을 뿌리며 시뻘건 물을 씻어 내고 있었다. 동생은 없었다. 큰 슬리퍼는 계단을 올라올 때는 한결 편했다. 동생을 잃어버렸다. 엄마한테 혼날 것이 뻔했다. 그날 밤, 엄마와 아빠는 집에 오지 않았다.

 

얼마 후 처음 보는 아저씨가 찾아왔다.

“꼬마야, 동생 어디 갔어?” 내가 동생을 잃어버렸다.

“꼬마야, 나는 경찰 아저씨야. 동생이 많이 아픈데 누가 동생을 다치게 했니?”

동생이 다쳤다고? 동생은 난간에 앉아 있다가 없어졌고, 동생을 난간에 앉힌 것은 나였다.

“누가 동생을 아프게 했어?” 경찰아저씨는 무릎을 굽히고 나와 눈높이를 맞추고 부드럽게 물었다. 겁이 났다. 비록 6살 기억이지만 선명했고 죽을 만큼 무서웠다. 경찰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내가 범인이라는 사실이 무서웠다. 나는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거짓말을 했다. "어떤 아저씨가 그랬어요" 나쁜 짓을하면 경찰이 잡아간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 여기 사는 사람이니?”

“잘 몰라요”

 

여기까지 기억이 전부다. 지금 생각하면 동생이 2층에서 떨어져 심하게 머리를 다쳤고 1층 바닥은 피로 물들었다. 사람들이 급히 병원으로 동생을 옮겼고, 엄마와 아빠는 병원과 경찰서를 오가며 제정신이 아니었을 것이다. 나와 경찰은 그런 와중에 만났다.

엄마는 자주 울었다. 아빠는 말이 없었다. 나는 눈치를 보며 늘 구석을 찾아가 앉아 있었다. 작고 통통한 양손을 모아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며 엄마와 아빠를 번갈아 보곤 했다. 한 달인지, 두 달이 지났는지 모르지만, 진이가 집에 왔다. 동생을 만나서 나는 좋았다. 진이는 반질반질 스님 머리를 하고 있었다. 작은 머리를 가로지르는 커다란 수술 흔적을 보았으나 그 상처가 의미하는 것을 알지 못했다. 엄마와 아빠는 음식을 진이 입에 넣어주며 웃었다. 진이도 음식을 받아먹으며 웃었다. 나도 웃었다.

 

상담실이 지나치게 덥게 느껴졌다. 이야기하는 동안 눈물은 나지 않고 다만 붉은 홍조가 얼굴 전체를 뒤덮어 버렸다. 몸에서 힘이 빠지고 축 늘어져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잠시라도 누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선생님, 누가 저를 보고 있으면 등에서 땀이 나고 심장이 떨려요. 정말 힘든 시간을 지나왔어요. 얘기를 하고 나니 속이 후련해지는 느낌이에요.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때 언니도 같이 있었데요. 언니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것 같지 않은데 왜 저만 이렇게 된 걸까요?.” 의사는 사람마다 충격을 받아들이는 정도가 다르다고 했다. 이제는 죄책감을 벗어버릴 준비를 하자고 했다. 약을 처방해 주었다.

 

나는 진이를 보면 화가 났다. 진이는 중학교 1학년까지 밤에 이불 위에 오줌을 쌌다. 아침마다 진이가 엄마한테 야단맞을 때도, 공부를 못해서 고등학교에 가까스로 들어갔을 때도 화가 났다. 늘 싸늘한 언니였다. 다른 사람에겐 웃어도 진이에겐 냉정했다. 매번 숨어서 울면서도 여지없이 투박하게 대했다. 진이는 자주 이렇게 말했다.

“언니는 좋겠다. 언니는 좋겠다.” 무엇이 부럽다는 것인지 물어본 적도 없다.

“공부해, 한글도 간신히 떼고 그게 뭐니? 한글은 노력만 하면 되는 거야!” 동생은 뇌를 심하게 다쳐서 공부머리가 없다. 그리고 사물을 볼 때 얼굴을 삐딱하게 돌리고 본다. 그럴 때마다 고개를 반듯하게 하고 보면 사물이 안보이냐고 핀잔을 주었다.

 

“자, 해봐.” 진이의 얼굴을 반듯하게 붙잡고 벽에 걸린 그림을 보라고 했다.

“보여? 안 보여?”

“보여!”

“그런데 왜 삐딱하게 기울이고 보는 거야.”

 

동생은 뚱해져서 입이 툭 튀어나온다. 잘 안되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만 잘 보이는 모양이다. 고쳐주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고칠 수 없었다. 진이는 나 때문에 예쁘지도 않고 똑똑하지 못한 사람이 되었다. 끔찍한 죄책감에서 도망치려고 나는 가혹하고 쌀쌀맞은 언니로 살아버렸다.

“언니는 좋겠다. 언니는 좋겠다.” 이 말은 ‘다 언니 때문이야!’라는 말처럼 들렸다.

 

세월은 흘렀다. 진이는 많이 배우지는 못했지만, 착한 남편을 만났다. 아이가 생기지 않아 여자아이를 입양해 사랑으로 키우고 있다. 알콩달콩 살고 있다. 대견하다.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저물어 가는 석양빛에 눈이 붉게 물들었다. 눈물이 흐른다. 이번엔 다른 눈물이다. 상처 입은 나를 위로하는 눈물이다. 자동차 조수석에 내던져진 가방 안에 하얀 약 봉지가 보인다. 마음에 바르는 약이었으면 좋겠다. 다정한 언니로 살았으면 좋았을 것을… 이제야 비로소 사랑하는 진이와 상처받은 내 영혼을 꼭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동안 정말 미안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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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처녀의 기도

 

 

|   JEONG, KYUNG HWA

 

1994년은 29세 노처녀인 내게 극적인 반전이 있었던 해다. 지금 생각하면 서두르지 않아도 될 나이인데 왜 그리 호들갑을 떨었는지 모르겠다. 동갑내기 직장동료와 외로운 마음을 달래려 인천 월미도에도 가고 산에도 올라 봤지만, 두 노처녀의 마음은 그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았다. 당시 생각엔 스물아홉을 넘기면 영원히 혼자 살 것 같았다. 조급한 마음에 우리는 기도라도 해보기로 했다. 금요일 점심 후 30분 정도 성경 말씀을 나누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그러나 이 일은 상당한 위험이 따르는 일이었다. 당시 내가 다니던 회사는 신우회 결성을 무척 경계하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과거 신우회를 중심으로 노조가 형성되었고 결국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파업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사측의 불성실한 태도에 분노한 노조원들, 정확히 말하면 신우회 선배들은 꽹과리를 들고 회장님 아들 결혼식장으로 쳐들어갔고 하나밖에 없는 회장 아들 결혼식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지? 결국 신우회 선배들은 그리 길지 않은 기간을 거쳐 하나 둘씩 회사에서 사라졌다는 전설이 있다. 그 때문에 우리는 은밀한 장소가 필요했다. 그때도 나는 머리 회전이 좀 빨랐던 모양이다. 4층에 있는 계열사의 장 부장님이 떠올랐다. 엘리베이터에서 몇 번 눈인사를 나누다 안면을 익혔고, 프로젝트를 같이 한 적도 있다. 물론 그는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 D-day가 왔다. 9층에서 4층으로 계단을 통해 내려갔다. 할 말을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서다. 한 손에는 캔 음료 하나가 들려있었다.

 

“장 부장님~~~”

“어, 웬일이야? 어서 와. 여기 앉아”

잠시 일상적 인사말을 나누고 바로 솔직하게 사연을 털어놓았다. 4층에 있는 빈 강의실을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애절한 눈빛으로 호소했다.

“그래? 음…. 옛날 신우회 사건 들었나?”

“네, 그 전설은 알고 있어요. 조용히 아무도 모르게 할게요. 부탁드려요”

잠깐 고민을 하던 장 부장은 No 찬송, No 통성기도 조건으로 허락했다. 추가로 성경책을 손에 들고 다니지 말아야 한다는 조건도 있었다. 그 후 나와 뜻을 같이하던 회사 노처녀협회 회원 6명은 매주 금요일 4층 강의실에 모여 성경 말씀도 읽고 각자의 기도 제목을 공유하며 즐겁게 지냈다.

 

그러는 사이 나는 새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다. 종로 본사에서 강남지사와 협업해야 했다. 1994년은 지금처럼 오토바이 퀵 서비스가 없던 때다. 서류를 급히 보내려면 직접 움직이거나 다른 직원 일정이 맞으면 그편에 전달해야만 했다. 일은 많은데 강남까지 갈 시간도 없고 해서 선배에게 물었다.

“황 선배님, 아래 4층 사람 중에 아는 직원 있어요. 강남으로 서류를 보내야 하는데, 그쪽은 강남에 자주 왔다 갔다 하는 것 같던데요?”

“있지. 소개해 줘? 거기도 황 씨야!” 메모지에 이름과 부서명을 적어준다.

 

“여보세요? 황ㅇㅇ 씨죠? 저는 편집국 디자인팀 정oo이라고 하는데요, 혹시 아세요?”

“정oo 씨요? 잘 모르는데요.”

“아, 네. 그럼 죄송하지만 강남으로 서류를 보낼 게 있는데, 그쪽 부서에 강남으로 가시는 분 있나 해서요.”

“없습니다.”

“네, 알겠어요.”

 

전화를 끊고 참 재수 없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생각이나 해보고 없다고 하는 거야? 거절하는데 1초도 채 안 걸리네’ 투덜거리며 가방과 서류봉투를 들고 일어서려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를 받았다.

“아, 저…. 좀 전에 통화했던 황ㅇㅇ입니다. 방금 강남으로 갈 사람이 생겼어요. 서류 가지고 내려오시죠.”

 

다행이다 싶어 다급히 4층으로 내려갔다. 내가 기도하던 익숙한 강의실을 지나 황ㅇㅇ 씨 앞에 섰다.

‘남자가 왜 이리 하얗지?’ 그를 본 첫 느낌이다.

서류봉투를 받아 자기 책상 위에 올려놓고 일어서면서 그는 말했다.

“커피 한잔 사시죠?” 내 이럴 줄 알고 동전 몇 개를 가져왔다. 어련히 알아서 보답할까. 괜스레 100원짜리 동전도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부탁하는 사람은 나지. 한잔 사자!’

자판기에서 커피를 꺼내 들고 복도 의자에 나란히 앉았다. 잡티 하나 없는 하얀 피부에 까칠하게 생겼다.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불편한 이 사람과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몰라 종이컵만 만지작거렸다.

“실은 정oo 씨 알아요. 전부터 봤어요”

“그래요? 전 뵌 기억이 없는데요?”

“그리고 원래 강남으로 갈 사람은 없었는데, 후배보고 가라고 해 두었어요”

 

4층 강의실을 빌려 기도하던 우리를 보고 그는 늘 욕하며 지나갔다고 한다. 교회에서나 할 것이지 왜 회사까지 와서 지랄이냐고. 키가 크다 보니 문 위쪽에 난 네모난 창문으로 한심한 인간들이 일주일에 한 번씩 보일 때마다 이상한 족속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그렇게 버릇처럼 그 방을 보면서 지나치기를 반복하다 우리가 없는 날은 궁금했다고 했다. ‘어, 이 인간들, 왜 안 왔지?’ 그러다 내 뒷모습, 내 옆모습, 또 내 뒷모습, 또 내 옆모습을 보며 하루하루 시간은 흘렀다. 6명의 얼굴을 모두 보게 됨과 동시에 내 앞모습도 보게 되었고 1층 은행에서도 식당에서도 간혹 출근길에서도 나를 보았다고 한다.

 

그가 물었다. “혹시, 남자 친구 있으세요?”

갑작스러운 질문에 순간 머리에서 또르르 돌 굴러가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나도 모르게 “남자 친구와 헤어진 지 15일밖에 안 됐어요.”라고 해버렸다.

내가 미쳤어! 지금껏 결혼을 위해 기도해 오지 않았던가? 15일은 또 뭐람? 남친 없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한심스러웠겠지. 부끄러웠을 거야. 어차피 기대도 안 했는데 잘됐다. 내려놓으면 모든 것이 편해지는 법이다. 커피도 마시고 식사도 했다. 그런데 15일 뒤, 그가 회사를 그만둔다는 것이다. ‘그 15일이 이 15일이었나?’ 신기했다. 겉으로는 좋은 곳으로 가신다니 축하한다고 했지만 섭섭했다. 시작도 못 해보고 끝나고 마는구나. 살짝 아쉽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가 떠난 후 이틀쯤 되었지 싶다.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했는데 받으면 모두 “황ㅇㅇ 씨랑 결혼해요?”라는 말이 쏟아져 나온다.

결국엔 입사 동기가 나를 복도로 불러내서 사건의 전말을 알려주었다.

 

“황ㅇㅇ 씨가 회사를 그만두면서 장 부장한테 말이지… 정oo 씨랑 결혼한다고 했다는 거야. 그러자 그걸 장 부장이 부서 회의 때 직원들에게 말한 거지. 소문이 쫙 퍼졌어. 그 말 정말이야?”

“무슨 소리? 겨우 4번 만났는데.”

 

수습할 길이 없었다. 회사를 그만둔 그의 집 전화도 모르고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지금처럼 핸드폰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삐삐도 대중화되기 전이니, 주먹만 불끈 쥘 수밖에. 어느 정도 소문이 잠잠해졌나 싶던 어느 날, 그로부터 전화가 왔다. 내가 기도하던 강의실에 와 있으니 잠깐 내려오라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반갑고 한편으로는 너 잘 만났다 싶었다. 전화를 끊자마자 바로 뛰어 내려갔다. 강의실 문을 활짝 연 순간 나는 까무러칠 뻔했다. 내 동기, 후배, 선배들이 너무나도 해맑은 얼굴로 잔뜩 모여 있었다. 그 안에 황ㅇㅇ 씨가 있었다.

 

“어, 맞네. 사귀는 거 맞구먼!”

“어느 쪽에 축의금 내야 하는 거야? 엉?”

 

그렇게 1년 후, 우리는 결혼했다. 난 야생마 한 마리 길들이는 쉽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 그 역시 이렇게 말했다. “난, 당신이 천사인 줄 알았어. 그런데 내 천적일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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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 동굴

 

 

|   JEONG, KYUNG HWA

 

허공 동굴에 나를 가둬놓았다. 복층 구조의 사무실 2층은 공중에 뜬 동굴과 같다. 선뜻 올라가기 싫어지기도 하고 또 올라가면 내려오기 싫어지는 이중적 은둔의 공간이다.

 

최근 몇 년은 삶의 세파가 나만 할퀴고 달아나는 것만 같았다. 이 불공평함에 대해 하늘을 원망하기도 했지만, 정작 원망해야 할 대상은 언제나 ‘나’ 자신이었다. 그래서 난 두 달간 시골 생활로 가장 낮은 단계에서 나를 죽여보기로 했다. 마법에 빨려 들 듯 나는 경기도 양동 석곡리 J언니 집으로 무작정 숨어들었다. 내 긴 삶의 여정 중, 고난 코스로 막 돌아 들어가고 있는 시점에 마침 J언니도 그 길을 걷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헐레벌떡 뛰고 있다면 그녀는 천천히 걷고 있는 느낌과 같았다. 그래서 그냥 같이 걷기로 했다. 혼자는 두려웠기 때문이다. 숨으려고 도망간 그곳은 오히려 환하게 불 켜진 무대 같았다. 분주히 막은 오르고 내리고, 소품들이 여기저기 널려있으며 수많은 단역 배우들이 들락거렸다. 수행자처럼 숨어든 나는 우울할 틈이 없어 사뭇 당혹스러웠다.

 

뜨거운 6월 어느 날, 땅콩을 심기로 했다. J언니의 800평 밭은 세로로 길게 뻗어 있다. 게다가 밭 끄트머리는 언덕져 있는 탓에 끝이 보이지 않는 지평선과 같았다. J언니와 나 그리고 왕년에 전기를 좀 다뤘다던 P선생이 함께 밭으로 갔다. J언니가 인터넷에서 산 조립되지 않은 기구가 밭에 널브러져 있다. 피복기라고 했다. 그 생소한 부속품들은 어딘가 모르게 엉성해 보였다. 설명서를 보고 부품들을 이리저리 맞춰보는 J언니와 P선생을 지켜보았다. 설명서를 들고는 있지만, 왼쪽에 놓아야 할 것은 오른쪽에, 앞에 갈 것을 뒤에 놓고는 토론을 벌이고 있다. 저마다 확신에 찬 목소리는 커져만 갔다. ‘저 부품들은 오늘 안에 조립될 수 있을까?’ 나는 마음이 조급해졌다. 이 일을 마치고 나는 또 할 일이 있다. J언니 집 앞에는 큰 컨테이너 2개가 놓여있다. 그것은 작은 도서관으로 탈바꿈 중이었다. 내부 작업을 진두지휘하는 L선생에게 보조가 돼주기로 약속했었다. 금방 밭에 갔다 오겠다고 하고 왔다. 아니다. J언니가 잠깐 밭에 가서 순식간에 해치우고 오자고 나를 잡아끌지 않았던가.

 

그들이 논쟁하는 사이 난 설명서를 슬그머니 빼앗아 읽어보았다. 대체 이렇게 쉬운 것을 가지고 왜 의견이 분분한 것이지?

“잠깐만요. 이것은 저거랑 자리 바꿔놓고, 이건 손잡이예요. 이건 검정 비닐을 걸 걸대에요. 그리고 피복기를 앞에서 끌면… 어쩌고저쩌고… 흙이 비닐을 누르게 되는 원리에요” 잘난 척 같지만, 그것이 답인 것을 어찌하겠나. 밭일 목적으로 빌려 입은 헐렁한 큰 셔츠를 걸친 나는 다소 거만하게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때, 마치 스스로 깨달았다는 듯 ‘알았어!’를 외친 P선생이 갑자기 중간 지지대 봉을 끼우고 바퀴를 달았다. 6월 뜨거운 햇볕에 온몸은 땀으로 젖어 들었다. 겨우 의견을 모아 조립을 마쳤고 곧이어 실행에 옮겼다. J언니와 P선생은 앞에서 손잡이를 잡고 힘차게 끌고 나는 뒤에서 밀기로 했다. 검정 비닐도 잘 풀리고 땅도 잘 파였다. 그런데 오른쪽 바퀴 부분에 비닐과 흙이 따로 놀았다.

하나, 둘, 하나, 둘.

앞에서 끄는 이들은 신중했으나 조금씩 속도가 빨라졌다. 허리를 굽힌 자세에 장화 신은 둔한 발로는 속도를 맞추기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흙을 피해 달아나는 검정 비닐을 낚아챌 수가 없다. P선생이 다급하게 외쳤다.

“어. 안 되네. 어떻게? 멈출까?”

난 단호히 소리쳤다. “아니에요. 계속 가세요. 제가 알아서 할게요!”

나는 위기가 발생하면 그때 서야 똑똑해지는 편이다. 더불어 추진력이 급상승했다. 나는 재빨리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바닥을 네발로 기어가기 시작했다. 기합 소리에 맞춰 빠르게 기어갔다. 한 손으로 비닐을 낚아채어 땅에 붙이고 다른 한 손으로 흙을 쓸어 비닐 위에 덮어가며 기었다. 아래로 쏟아져 내린 머리카락은 땀범벅이 된 얼굴에 들러붙었다. 내 두 다리는 대지의 흙을 가르며 나아갔다. 앞에서 끄는 이들의 탄성이 들려왔다. 그 순간. 우리는 각자 자신의 세계에서 어떤 환희를 목도했을지도 모른다. 난 흙바닥을 네발로 기면서 야릇한 희열을 느꼈다.

 

얼굴이 까맣게 탔다. 왼쪽 뺨을 보니 군데군데 검버섯처럼 기미가 생겨났다. 고작 두 달여 시골 생활에 모습이 이렇게나 변할 수 있을까? 서울 사무실에 올라온 나는 거울만 붙들고 살았다. 참 초라해 보였다. 한편으론 얼굴 좀 햇볕에 탔기로 기미가 올라와 좀 못나졌기로 큰 한숨을 쉬고 있는 내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더욱 자신을 심하게 질책하는 이유는 주먹을 불끈 쥐며 다짐했던 어제를 잊었다는 것에 있다. 절실함이란 강을 건넌 지도 얼마 되지 않아 관성처럼 튕겨 되돌아오는 습관의 반복이란 것. 공허와 허무 그리고 비워진 자리를 채우려는 욕망. 내 의식은 그 부질없음을 뛰어넘지 못했다. 며칠간 나는 오직 거무칙칙한 기미에 집착했다. 손가락으로 문지르며 신음하고 낙망하기를 반복했다.

다짜고짜 집을 나섰다. 내가 잘 알고 있던 병원을 향해 빠른 속도로 걸었다. 마음이 한결 밝아졌다. 이렇게 신나고 가뿐한 발걸음도 새삼 스러웠다.

한걸음에 달려가 의사와 마주하고 앉았다. 나는 의사에게 기미 제거 레이저 시술을 받고 싶다고 했다. 의사는 책상에 양팔을 올려놓은 채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음. 기미는 그렇다 치고 말이야. 쌍꺼풀은 있는데 눈꺼풀을 끌어 올리는 근육 힘이 약하네…. 힘이 없어 보이잖아. 사람은 말이야, 눈에 힘이 빡! 살아있어야 해. 실로 살짝 집어 올리면 좋겠는데, 집어 줄까?”

“아, 정말요? 네, 좋아요”

한쪽만 하면 안 되고 양쪽을 같이해야 자연스럽다고 그가 말했다. 기존 있는 쌍꺼풀에서 약 0.5mm 정도 키우겠다고 한다. 난 하는 김에 1mm 잡으면 안 되냐고 했더니 눈이 작아서 안 된다고 했다. 더 키우려면 눈을 옆으로 찢어야 한다고 했다. 아쉬웠다. 나는 자연스럽게 해달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시술대에 올랐다.

마취해서인지 느낌은 있으나 통증은 없으며 의사와 즐겁게 대화까지 나눴던 시술은 끝났다. 간호사는 내 손에 손거울을 들려주었다.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으악! 이게 0.5mm에요?” 울고 싶었다. “괜찮아. 부기 빠지고 나면 날 고마워할 거야”

끔찍하게 부어 뒤집어 까진 두 눈이 영 돌아올 것 같지가 않았다. 실로 한 두 땀 바느질하듯 한 것 아니었나? 이렇게 끔찍하게 부어오를 줄은 몰랐다. 그리고 그 옆엔 잊고 있던 칙칙한 기미가 더욱더 또렷해 보이기까지 했다. 아, 이를 어쩐다…. 이제 13일째 날을 맞았다.

 

자신을 허공 동굴에 가둬놓고 공허함에 시달렸다. 머릿속 허기는 실제 배고픔으로 반응했다. 뭔가를 목구멍 안으로 넘겨줘야만 할 것 같았다. 사무실 냉장고를 열어보니 마땅히 먹을 만한 것이 없다. 달걀 몇 개가 냉장고 문 한쪽 구석에 똘똘 뭉쳐 앉아 내 눈치를 보는 듯하다. 난 가스스토브에 냄비를 올리고 대충 물을 붓고 달걀 두세 개를 무정한 표정으로 꺼내 냄비 속으로 던져 넣었다. 또 쪼르르 거울로 달려가 동동 발을 구른다. 눈꺼풀을 살짝 들어도 보고 얼굴을 옆으로 돌려 차도가 있나 세밀하게 살폈다. 갓 삶아 껍질을 벗겨낸 달걀을 손에 들고 또 거울 앞에 섰지만 먹는 행위는 잊었다. 삶은 달걀을 들고 있던 손이 파르르 떨려왔다. “아, 당 떨어지는 느낌이야” 얼른 책상으로 돌아와 엎드렸다. 내 손엔 껍질이 벗겨진 하얀 삶은 달걀이 들려 있다. 책상 위에 엎드린 채 고개만 돌려 삶은 달걀 한입 베어 물었다. 달걀 맛 따위엔 관심 두지 않은 채 좀 모자란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진짜~ 후회된다” 부정확한 발음 소리와 함께 달걀노른자 가루가 입 밖으로 튕겨 나왔다. 더럽다. 목구멍으로 넘겨줘야 할 의무감으로 달걀을 넘기려 하는데 넘어가질 않는다. 마치 뱀이 쥐를 잡아 통째로 목 넘김을 하는 그 속도보다 더 느린듯하다. 하필 그 생각을 하니 구역질이 올라왔다. 목을 움직여 꾸우 욱 밀어 내렸다.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그 느림은 내가 지금껏 하나님 응답에 목매던 무응답의 시간보다 더디게 느껴졌다. 컵에 있는 물을 벌컥벌컥 마시며 중얼거렸다. “다음엔 절대 달걀노른자는 먹지 않을 거야” 퉁퉁 부은 눈두덩이까지 욱신거렸다.

 

달걀을 거의 삼켜갈 즈음 전화벨이 울렸다. Y가 만나자고 했다. 오랜만에 온 연락이라 반갑기도 했지만, 나는 여러 가지 이유를 둘러댔다. 자주 연락도 없던 Y가 하필 이때 만나자고 조르는지 알 수 없었지만, 버럭 화를 내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내 돌발 행동에 흠칫 나도 놀랐다. 긴장으로 숨을 헐떡거리며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는데 연이어 J언니가 전화를 걸어왔다. 아무렇지 않은 듯 다소 긴 통화를 하면서도 나는 거울 앞에 붙어 서서 기미가 아닌 눈두덩이를 들여다보다 통화를 마쳤다. Y는 영문도 모르고 홀대를 받은 것이 억울했던지 자기가 무슨 잘못을 했느냐며 여러 번 문자를 보내왔다.

그러던 차에 전화벨이 또 울렸다. 나는 크게 소리쳤다. “왜 또? 안된다니까. 사정이 있다고!!!”

침묵이 흐른다. ‘…’

Y가 아닌 J언니 목소리가 끊어질 듯 말 듯 매우 가늘게 흘러나왔다. “경화야…”

나는 횡설수설 두서없는 해명을 하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는데 난데없이 초인종이 거칠게 울려댔다. 사회성 부족한 애완견 푸가 깜짝 놀라 미친 듯이 짖었다. 사무실에 웬 개냐고? 나는 애완견 푸와 함께 사무실을 지키고 있다.

띵동띵동,

“왈~왈 왈왈왈”

도어폰을 보니 어떤 사람이 모자를 쓰고는 초인종을 눌러대고 있다. Y가 온 것일까? 심장이 터질 듯 뛴다. 띵동띵동, “왈~왈 왈왈왈”

 

J언니가 전화를 끊었다. 초인종 소리도 멈췄다. 적막이 흘렀다. 나는 도둑처럼 살짝 현관문을 열었다. 생수 12통이 문 앞에 떡하니 놓여있고, 사람은 없다. 주소를 잘못 입력한 탓에 간신히 찾아 배달하니 본인이 아니면 연락 달라는 택배기사의 문자가 날아들었다. 목이 찢어질 듯 탔다. 12통 생수를 다 마셔도 해갈될 것 같지 않았다. 의기소침해진 나는 사무실 복층 계단을 올라 허공 동굴에 힘없이 누웠다. 숨 막히는 적막 속에 시간은 흘러갔다.

명치 부분이 묵직하게 굳어졌다. 머리가 깨질 듯 아프고 구토가 올라 허공 동굴의 가파른 계단을 오르내리며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나는 허공 동굴 안에 누운 채 생각했다. 이제… 텅텅 비어버린 존재로서의 나를 받아드리자. 그리고 이곳을 탈출해 내려가자. 세상으로! … 아니… 저… 아래 넓은 1층으로 내려가자! 그리고 사람들이 쌍꺼풀 수술을 했느냐고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고 당당하게 말하자. 난 단지 쌍꺼풀 시술을 받았을 뿐이라고.

2021년 6월 더웠던 그 어느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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